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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편지지★/마음을 울리는(소설,책리뷰)

[소설 슬로리딩] 야만적인 앨리스씨 - 황정은 장편소설


황정은 장편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

문학동네. 2013.




황정은을 처음 안 것은 별로 오래 되지 않았다.

우연히 시청한 <비밀독서단>이란 프로그램에서 

황정은의 또다른 장편 소설 <百의 그림자>를 소개 받았다.

매력적인 소개와 강한 끌림에 곧바로 사서 읽어 보았다.


황정은은 내가 찾던 바로 그런 작가였다!


담담한 문체 안에 신비롭고 몽환적인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이야기한다.

기대감을 안고 그의 다른 소설을 찾아 읽었다.

그것이 바로 <야만적인 앨리스씨>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앨리시어다. 

그런데 왜 제목이 ‘앨리스씨’인 것인지는 마지막까지 읽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다음부터는 소설 내용에 대한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SlowReading~




앨리시어가 여장 부랑자로 사거리에 서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괴상하고 불쾌하며 어쩌면 조금은 섬뜩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대는 앨리시어가 걸을 때 정장을 단단하게 차려입은 굵은 골격이 괴상한 방향으로 솟구쳤다 가라앉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대는 앨리시어가 발을 끌며 걷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불시에 앨리시어의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중략) 그대는 얼굴을 찡그린다. 불쾌해지는 것이다. 앨리시어는 이 불쾌함이 사랑스럽다.

-<야만적인 앨리스> P.7-8



시작부터 우울하고 불쾌한 분위기를 풍기는 앨리시어의 이야기는 그가 나고 자란 ‘고모리’란 곳으로 배경이 옮겨지며 계속 이어진다.


고모리는 무덤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다는 것에서, 무덤에 대한 떠도는 이야기가 굉장히 섬뜩한 ‘괴담’이라는 것에서, 이 이야기가 절대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고모리에서는 언제부터 죽었는지 모를,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개가 있고, 셈이 느리고 대답도 느린데다 그나마 자주 틀려 어른들에게나 동급생들에게나 바보일 때가 많은 동생이 있고, 재개발에 보상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혈안이 된 어른들이 있고, 툭하면. 씨발상태가 되는 어머니가 있고, 부모에게 학대를 받는 아이들이 있다.


이야기는 조금씩 조금씩 살을 더해가며 끝에 가면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난다. 마치 눈덩이가 불어나듯.


그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가난한 아이인 줄로만 알았던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은 씨발이 된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고 있었고 ‘사회 쓰레기 매립장’이 되어 버린, 버림 받은 마을에서 하청과 하청과 하청이 이어진 구조로 인해 일어난 폭발사건으로 동생이 죽기에까지 이른다.


불후한 아이인 앨리시어의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이 이야기의 제목이 왜 ‘앨리스’인지는 이야기 후반에 나온다.




소년이 있었다, 라고 앨리시어는 말한다.

소년의 이름은 앨리스.

(중략)

토끼를 쫓아 달리고 달려서, 마침내 토끼굴로 미끄러졌다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중략)

상당히 어둡고 긴 굴속을 떨어지면서 앨리스 소년이 생각하기를,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상당히 오래전에 토끼 한 마리를 쫓다가 굴속으로 떨어졌는데... 아무리 떨어져도 바닥에 닿지를 않고 있네... 나는 다만, 떨어지고 있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 계속... 더는 토끼도 보이지 않는데 줄곧...하고 생각하며 떨어지고 있었던 거다. 언제고 바닥에 닿겠지, 이제 끝나겠지, 생각하는데도 끝나지 않아서, 이게 안 끝나네, 골똘하게 생각하며 떨어지고 있었던 거다.

...

...

그래서 어떻게 되냐.

뭐?

앨리스 새끼는 어떻게 되냐.

-<야만적인 앨리스> P.129-132



이 부분이 이 이야기의 주제라고 생각한다. 앨리시어가 말한 앨리스 소년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앨리시어는 처음부터 지금껏 계속 토끼굴에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작가는 소설 중간중간에 이런 말을 한다.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이 이야기는 앨리시어가 토끼굴에서 계속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떨어짐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계속, 계속... 떨어지고 있다.


우리도 앨리시어와 같을 수 있다. 앨리시어가 특수한 상황에 처한 특별한 아이가 아닐 수 있다.


아니,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이런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앨리시어이고 앨리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