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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편지지★/가슴에 새겨지다(영화리뷰)

[영화 슬로리딩] 번지점프를 하다


번지점프를 하다

2001.02.03. 개봉 101분

장르 : 멜로/로맨스

감독 : 김대승

출연 : 이병헌, 이은주, 여현수




 <Daum 영화 공식 줄거리> 



“사랑을 느끼는 신비한 기억..."

1983년 여름. 

국문학과 82학번 서인우는 적극적이고 사랑스런 여자 82학번 인태희를 만난다. 자신의 우산 속에 당돌하게 뛰어들어온 여자 인태희. 비에 젖은 검은 머리,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당돌한 말투까지 인우의 마음은 온통 그녀로 가득 차 버린다. 

그녀의 존재로 가슴 설레여하고, 그 사람의 손이 닿은 물건이면 무엇이든 소중하게 간직하며 사랑은 무르익어 간다. 그러나 그들에게 군입대라는 짧은 이별의 순간이 오고, 서로에게 짧은 이별이라 위로했던 그 순간은 영원으로 이어지는데...

2000년 봄. 

인우는 이제 어엿한 가장이자, 고등학교 국어교사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태희를 잊지 못하는 그의 정수리 위로 다시 한번 소낙비가 내리고... 

17년 전, 소나기가 쏟아지던 그 여름 자신의 우산 속에 갑작스레 뛰어들었던 태희처럼, 다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람. 그녀처럼 새끼손가락을 펼치는 버릇이 있고,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라이터를 가지고 있고,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하는 그 사람에게서 인우는 다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영화 예고편> 







 <영화 OST> 










 <영화 명대사> 


인우야, 나 뉴질랜드 가고 싶어. 
거기 가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있대.

뛰어내리려고?


응. 뛰어내려도 끝이 아닐 것 같애.



*



왜 젓가락은 ‘ㅅ’받침인데

왜 숟가락은 ‘ㄷ’받침이야?



*


그럼 당연히 내가 같이 가야지.

근데 혹시 좀 늦더라도 꼭 기다려야 돼. 알았지?



*


왔구나.

미안해. 너무 늦었지.

늦게라도 와줘서 고마워.


*


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요만한 바늘 하나를 꽂고,
저 하늘 꼭대기에서 밀씨를 딱 하나 떨어뜨리는 거야.
그럼 그 밀씨가 나풀 나풀 떨어져서 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바로 그 계산도 안 되는 기가막힌 확률로,

니들이 지금 이 곳, 지구상의 그 하고 많은 나라 중에 대한민국,
중에서도 서울, 서울 안에서도 세현고등학교,
그 중에서도 2학년,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5반에서 만난거다.
지금 바로 니들 옆에 옆에 있는 친구들도
다 그렇게 엄청난 확률로 만난 거고, 지금 나하고도 만난 거다.

그걸 인연이라고 하는 거다.

인연이라는 게 좀 징글징글하지?


*


나는 다시 태어나도 너만 찾아 다닐거야.
악착같이 너 찾아서 너랑 사랑할거야.

정말? 근데 그 사람이 전생에 나인걸 어떻게 알아?

그건 알 수 있지. 알 수 있어.

어떻게?

내가 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 아냐. 
그럼 그게 바로 너야.

그게 뭐야. 아무나 사랑하고 나서 
나중에 나인 줄 알았다고 우기면 되겠네.

아니야, 알 수 있어.
너 아니면 누구하고도 다시 사랑할 수 없을 테니까.


*


몇 번을 다시 태어난대도
결국 진정한 사랑은 단 한 번 뿐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 심장을 지녔기 때문이라죠.

인생의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대도
그 아래는 끝이 아닐 거라고 당신이 말했었습니다.

다시 만나 사랑하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SlowReading~






어느 날 자신의 우산 속으로 뛰어 들어온 한 여인(태희-이은주) 인우(이병헌)는 그대로 첫눈에 반하고 만다. 이후 인우는 자신의 학과인 국문과도 버리고 태희의 학과인 조소과에서 조소과 학생인 듯 지내게 된다.


하지만 태희는 인우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인우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 어떤 건지 큰 반응이 없다.





그러다 태희는 인우의 마법에 걸리게 된다. 그건 바로 새끼 손가락을 들게 되는 마법! 자신도 모르게 새끼 손가락을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한 태희가  살며시 웃을 때 인우에 대한 호감과 사랑이 드러난다. 결국 태희도 인우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이 장치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쨌든 둘의 관계는 점차 친밀해 지고 마침내 엠티에서(인우는 자신의 학과인 국문과가 아니라 태희의 학과인 조소과 엠티에 따라간다) 이토록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 낸다!





노을이 진 바닷가에서 선남선녀가 왈츠를 추는 장면이라니! 더구나 실루엣으로 처리가 되어 더욱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사실 자세히 보면 별 것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저 멀리 조금 바다가 보이고, 부실한 나무 몇 그루가 보일 뿐이다. 그저 그 사이에 두 사람이 있고

왈츠를 추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장면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명장면이 된 것은, 단순히 장면이 ‘예뻐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닿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20대 초반의 두 남녀가 서로를 좋아하는 순수하고 풋풋한 감정이 직설적으로 맞부딪히지 않고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그렇게 조금씩 맞닿는다.


어쨌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고 사귀게 된다. 사귀자마자 서로 반말을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위의 사진이 바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명대사가 나오는 장면이다. 태희가 인우에게 묻는다. “왜 젓가락은 ‘ㅅ’받침인데 왜 숟가락은 ‘ㄷ’받침이야?” 인우가 국문과여서 물어본 질문이었다. 하지만 인우는 전혀 다른 대답을 내어 놓는다. 그럼에도 인우가 귀여운지 웃어보이는 태희이다.




여기서 잠깐! 태희의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알고 가도록 하자. 먼저 젓가락이 ‘ㅅ’받침인 이유는 사이시옷 규정 때문이다. 한국 어문 규정 제30항에 사이시옷에 대한 규정이 나온다.


사이시옷에 대한 규정을 살펴보면, 순 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것은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다.


위 규정에 따라 한자어 ‘저’와 가늘고 길게 토막난 물건을 세는 단위인 ‘가락’이 합쳐진 말인 ‘저+가락’은 ‘젓가락’이 된다. 이는 ‘차+잔’이 ‘찻잔’이 되고, ‘태+줄’이 ‘탯줄’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음은 숟가락이 ‘ㄷ’받침인 이유이다. 그 이유는 한국 어문 규정 제29항을 보면 된다.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소리가 ‘ㄷ’소리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 위 규정에 따라 ‘술+가락’은 ‘숟가락’이 되는 것이다. 이는 ‘바느질+고리’가 ‘반짇고리’가 되고, ‘이틀+날’이 ‘이튿날’, ‘설+날’이 ‘섣달’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대답을 알고 보니 더 복잡하다.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한 날만 이어질 것 같은 두 사람. 하지만 이야기는 갑자기 현재로 넘어온다. 학생이던 인우가 갑자기 선생님이 되어 있다.


새학기 첫 날. 아이들에게 ‘인연’ 명대사를 날리며 자기 소개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첫사랑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한다. 못이겨 첫사랑 이야기를 꺼내는 인우. 무언가 이상하다. 첫사랑이 이루어진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 느낌은 진짜였다. 그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태희는 죽었다. 인우가 군대 가는 날. 배웅해 주겠다고 기다리라고 한 태희는 결국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우와 태희는 다시 만났다. 다른 사람으로 환생한 태희를 알아본 인우. 조금 늦었지만 자신의 과거를 깨달은 현빈(여현수).


인우가 현빈을 알아볼 때 태희와의 기억이 사용된다. 이를테면 새끼손가락을 들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젓가락은 ‘ㅅ’받침인데 왜 숟가락은 ‘ㄷ’받침’이냐는 질문이라든지 말이다.


태희와 똑같은 모습을 볼 때마다 조금씩 현빈이 태희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인우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남자로 환생한 태희를 조금은 원망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들은 다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함께 네덜란드로 가 뛰어 내린다. 다음 생에 다시 사랑을 하기 위해.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이야기 후반부에 ‘동성애’이야기가 나온다. 그 당시 이 부분을 두고 기독교에서 엄청 비난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영화의 본질을 보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우도 현빈도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 심장’을 지녔던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든 어떤 성별을 가지고 있든지 말이다. 인우는 현빈이 ‘남자’여서가 아니라 ‘태희’였기에 좋아했다.


따라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다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모습이 바뀐대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 왔대도, 그 사람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환생’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내게 있어 ‘비현실’이고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만약’이라고 상상하고 끝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환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으로 질문을 바꾼다면 생각을 달라진다.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계속해서 사랑하고 싶다. 다른 조건이 아니라 단지 그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심장을 가지고 싶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기억’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 그 기억은 잊고 싶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고전 멜로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비현실적인 요소가 포함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풋풋하면서도 애절한 로멘스가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추천한다.